Ancient Seoul Metro.
서울탐험 - 신설동역의 비밀스러운 승강장 이야기

철도에 관심있는 사람이나 서울에 조금 오래 살았던 사람이라면, 지금은 고작 차량기지 연결용 지선으로 사용되는 서울 2호선 '성수지선'이 원래는 본선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필자의 연배 -당일로 26세-_- 로는 나이가 부족하겠으나) 순환선인 서울 2호선은 당초 신설동부터 포커라이제이션시계방향으로 단계적으로 건설되었으므로 당초에는 신설동을 통해 연결되어야 했다. (4단계로 완공된 것이 서울대입구까지였는데, 그렇다면 당시 시흥에서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는 고개 하나 슬쩍 넘으면 될 것을 잠실까지 돌아서 가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이 하루에 한명이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런데 사실 원래 서울지하철 계획은 지금 나와 있는 노선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버추얼서울 심시티의 원조(?) 격으로 취급되는 듯한 김현옥 시장 재임 시절에 수립된 계획인 듯한데, (이 김현옥 시장에 대해서는 '김시장'이라는 까대기용 수필집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차후에 리뷰할 예정) 서울시장 사상 최초로 4년을 재임한 시장답게 지하철도 거창하게 추진한 것이다. 서울시 사이트에 언급된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 세종로, 명동 등 지하도 개설, 자동차 전용 입체고가도로 건설 및 주요 간선도로 확장 포장
- 세운상가, 파고다 아케이드, 낙원상가 등 도심재개발 사업 추진
- 한강개발사업, 남산1 2호 터널 개통, 400여동의 시민아파트 건설
- 영동1 2지구, 화양 망우지구, 시흥 신림지구 등 대규모 구획정리사업 추진

...간단히 말해 이걸 현대화하면 이명박이 된다.

각설하고, 당시 계획된 노선도는 다음과 같다.

출처: 서문당 간행 컬러판 세계백과대사전 (1975)


지금 보면 1호선부터 5호선(!)까지 지금의 상식으로 알 수 있는 노선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노선과 비교해 보자.



지금의 서울지하철과 비교해 보면, 모양은 대체 이게 어느 나라인가 싶으면서도 지하철 통과 지역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위 백과사전에 의하면 (1975년 발행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자료는 1968~71년 사이의 것이다) 지하철 노선망 구축의 원칙은 10개 교외지역 (수유, 청량리, 불광, 잠실, 서울역(!), 영동(강남), 천호, 여의도, 구로, 연희) 을 연결하는 것으로, 여기서 5개 노선이 필요하다(!)는 놀라운 발상을 볼 수 있다. 덧붙여 '김시장'에 언급된 김현옥 시장의 성격을 고려하면, 아마 당초에는 구로에서 수유동이나 성북까지는 지하로 놓을 생각이었던 게 그나마 재정압박으로 국철 직결로 완화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신림동으로 연결되는 4호선이 시흥까지 가는 것은, 단순한 연결 뿐만 아니라 아예 수원에서 오는 열차를 이 쪽으로 직결하려 하지 않았을까나.

비교 노선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 지하철 통과 지역은 의외로 많이 겹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1호선은 그대로이다. 다만 최초에는 차량기지를 임시로 지금의 용답동이 아닌 본선 인근에 두려 한 듯하며, 이에 따라 차량기지 연결선의 연장은 0.77km로 되어 있다. (신설동-용답기지는 최단 약 2.5km 정도) 2호선 강서구간과 5호선 강동구간을 합하면 지금 5호선에 가까우며, 3호선은 현행 3/4호선의 도심 이북 노선과 거의 같다. 4호선은 2호선과 4호선의 한강이남, 용산 노선에 계승되어 있다. 하기야 서울이라는 도시 모양 자체가 누가 상상해도 교통축 자체는 뻔하게 되어 있는 게 사실이지만. 1기지하철에서 위 노선도에 비해 큰 차이를 보이는 곳은 영등포 지역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있다면, 김현옥 시장 당시의 계획은 철저하게 도심접근성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의 도심 기능은 서울역에서 삼일로에 이르는 지역에 극단적으로 집중되어 있었고, 그 때는 도심기능 분산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당시의 '마스터 플랜'이 서울 인구 750만이었고, 물론 강남이 지금처럼 커져 있으리라는 상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강남구 일대가 고급주택지를 넘어 업무중심지가 될 때는 이미 3호선이 터미널 2개로 빙 돌아갈 때이다. 대신 그 때의 계획안에서 중심이 되는 곳은 다름아닌 서울역임을 볼 수 있으며, 종로-을지로 5가 일대도 꽤 비중이 큼을 볼 수 있다. (사실 왜 3호선이 훈련원로가 아닌 돈화문로를 가로지르는가는 지금도 의문이다. 도심의 3호선은 완전히 '극장선' 아닌가.)

또한 지하철의 규모가 그리 커지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은 듯 용답 차량기지를 1/2호선과 5호선이 1985년경부터 공유하게 되어 있었다. (비교 노선도의 파선이 그 차량기지 연결선) 지금이야 노선 하나가 용답기지만한 차량기지를 2개씩 두어야 할 정도로 되었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위 계획안은 1호선의 완공을 보기도 전에 난지도로 추방된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 재정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순차적으로 건설하여 마스터플랜에 이르려 했던 게 (그게 박정희 시대의 특징이다. 여러 곳에 분산투자하는 게 아니라 하나씩 일찌감치 해치우기.) 고인플레이션과 재정난 (이외에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으로 늦춰진 것이다. 여기에 성수동 쪽의 개발이 가속되어 3호선은 집어치우고 5호선을 수정해 먼저 들어간 게 아닐까. 아무튼, 위의 계획이 시행되었다면 강남의 스타는 지금의 삼성동이나 대치동이 아닌 반포, 방배동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다른 포스팅에도 공통적이지만- 이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나 내용은 별다른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출처가 서문당 (지금도 있는 출판사더군요) 의 세계백과대사전이라는 것은 잊지 말고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by Dataman | 2005/09/04 22:15 | unwander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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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간헐천 in Blue .. at 2005/09/20 03:36

제목 : Ancient Seoul Metro.에 이어...
Ancient Seoul Metro. 근래 서울지하철과 관련하여 아주 좋은 참고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서울시 관료를 역임한 손정목씨가 지은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 (한울, 전 2권) 로, 서울을 위주로 건국 이래 도시 행정에 관한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인상입니다. 일단 1권을 구입해 읽고 있습니다만, 관심있는 분들께서 많이 구해 읽어 보시기......more

Commented by NOT_DiGITAL at 2005/09/04 23:13
'...간단히 말해 이걸 현대화하면 이명박이 된다.' 부분이 아주 가슴에 와 닿는군요. -ㅅ-

NOT DiGITAL
Commented by 한국출장소장 at 2005/09/05 00:38
서울은 참 재미있는 곳이군요(부산 촌X)
Commented by 안모군 at 2005/09/05 09:27
김현옥 시장은 여러모로 서울시장 중에 독특한 사람이죠. 이명박의 벤치마킹 대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
저 당시의 계획안을 리셔플링 한게 지금의 지하철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군요. 일단 초기 아이디어는 말굽형 노선을 기초로 한 듯 한데, 아마도 순환선을 만들 생각을 안한 결과가 아닐까 싶군요.
김현옥의 강남개발안은 원래 미국 스타일의 교외전원도시 형태에 가까웠다고 하죠. 이후에 이게 뒤집히면서 현재의 강남설계가 나왔죠. 당시에는 인구팽창이 이정도로 클 줄 몰랐달까요.
저 안에서 교외구간은 모조리 지상으로 뺐다면 예산 면에서는 그나마 한숨 돌렸을지도 모르죠.
1호선 공사 당시 개착공법을 적용하면서 복복선화를 위한 예비터널을 만들어 두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2호선의 연장시 1호선과 노선을 공유할 계획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호선 개통 당시엔 4량 전철이 10분 시격으로 다녔으니, 군자기지만 가지고도 1/2호선 수요는 충분히 감당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Commented by ◆박군 at 2005/09/05 18:10
차치하고라도, 저 도심을 U자형으로 감아싸는 형태는 상당히 기능적이라 외국에서 도로 벤치마킹해갈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Commented by lainid at 2005/09/05 22:13
제가 초등학교때.. 그러니까 80년대 초반에도 2호선 순환선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선능에서 이대까지 어느쪽으로 가도 역수가 같았죠..
Commented by 불의정령 at 2005/09/07 10:12
웬지 미국보단 일본 동경메트로를 보는듯한 느낌이네요..
Commented by Fillia at 2005/09/13 05:14
저 사진, 일본어로 써있는데 일제시대의 경성지하철 계획도와 많이 겹치지 않을까 싶네요.
원래는 '경성'에 1950년인가 1955년부터 1호선 개통으로, 도쿄처럼 아주 촘촘하게 지하철이 깔릴 계획이었던 걸로 들었거든요.

박통이 1호선 개통식때 어이없게도 그 소릴 하면서 '아쉽게도 전쟁에서 지는 바람에 20년이나 늦어졌다'소릴 해서 관리들과 기자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는 야사가 아직도 전해오지요, ^^;
Commented by Dataman at 2005/09/13 18:47
Fillia님/ 아래 지도는 제가 현재의 지하철 노선과 비교하기 위해 사용한 건데, 어쩌다 보니 일본인용 관광 가이드 지도밖에 나오지 않아 그것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경성지하철 이야기도 일리가 있는 게, 일본이 다이쇼와 쇼와 사이에 대거 지하철 등 도시 인프라 건설에 나선 것을 본다면 아예 천도 대상이라고도 했던 서울에도 그만한 정비가 뒤따랐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아예 강남이나 영등포에 신도시를 만들어 경성을 완전히 옮겼을지도 모르겠군요)

박통 이야기도 재미있고요 ;)
Commented by 【天指花郞】 at 2005/12/07 12:53
천도 대상은 현재 수지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명박 at 2006/01/11 03:15
저렇게 지었더라도 확실히 전혀 지하철이 연결해주지 않는 7, 8호선 연변을 보면 7, 8호선은 필수고 대부분 지하철이 통과하지 않는 6호선도 일부 수정해서 박아야 했을 꺼 같네요. ^^
Commented by Dataman at 2006/01/11 09:33
명박님/ 닉네임이 특이하시군요 :)
저 위의 노선도가 상정된 시기는 70년대 초입니다. 당시 서울의 지도를 보면 지금의 서울 시가지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다르죠. 당시 서울시에서 시가지로 개발된 땅은 전체 면적의 40%를 밑돌 정도입니다. (현재는 70% 정도) 사대문 밖이나 경인선 연변을 제외하고는 간헐적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상태였던지라 저리 디자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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