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습의 나리타 30주년
  밑에서 아슈하바트 공항 이야기를 한 김에, 근래 개항 30주년을 맞은 나리타에 생각이 닿게 되었다. 1978년 5월에 개항한 나리타 공항은, 올해로 개항 30주년을 맞았다.


  나리타 공항은 어쩌면 세계 최초로 국경을 넘는 역내 허브 개념으로 건설된 공항이라고 할 수 있겠다. 2차대전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동쪽에 있던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핵심이 되었고, 도쿄는 따라서 아시아 최대의 도시로 발돋움했다. 팬암의 세계일주 노선 PA001/002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 웨이크제도를 지나 도쿄에 먼저 닿았고, 다시 여기에서 서울, 타이페이, 홍콩, 마닐라 등으로 퍼져나가는 아시아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런 역할을 맡은 것은 전쟁 전부터 존재하던 하네다 비행장이었지만, 역시나 오래된 시설이기 때문에 60년대 고도성장기를 맞은 도쿄에서는 곧 포화를 맞게 되었다. 이 때문에 대체지로 선정된 것이 왕실 소유지 등이 많았던 나리타인데, 그나마도 온갖 분쟁이 끊이지 않은 탓에 개항까지 15년이나 걸리고, 그나마도 초기 계획의 반도 안되는 규모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지도를 보면 그 숙연한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당초 나리타는 4000m급 활주로 3개가 H 형태로 교차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지만 단 한개만이 건설되었고, 반대편의 B활주로 (16L/34R) 는 개항 24년차인 2002년에야 개통을 달성한다. 다만, 설계가 4000m가 아니라 2500m로 변경되었는데, 이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34R의 남단에 둥그랗게 표시된 곳에 있는 민가이다. 이 집이 나가지 않아서 4000m급이었어야 할 활주로가 2180m로 나가리가 났다. (온갖 나리타공항 반대 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도 2180m짜리 B활주로나마 제대로 활용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랐을텐데, (B767이 화물 만재 상태에서 착륙 가능) 그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위에 유도로가 휘어진 부분이 눈에 띄는데, 그 쪽의 토지수용에 실패해서 유도로를 똑바로 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도로와 활주로의 독립운용이 불가능하다. 이를 가중시킨 건 그 아래의 동그라미 부분인데, 이 부분의 토지수용이 되지 않은 탓에 (당연히 B활주로가 제대로 건설되었다면 수용할 필요가 없는 부지이다) B활주로를 들락거릴 수 있는 유도로가 한가닥밖에 남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주로 사용하는 A활주로가 연간 13만회 처리가 가능한 데 비해 B활주로는 6만회가 고작이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아시아나가 주 5회에서 하루 5회로 늘어난 것과 중화-에바항공이 나리타로 들어간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기 어렵다.


  이 동안에, 특히 21세기에 들어와 하네다가 겪은 변화는 매우 크다. 우선 다소 여유가 생긴 동안에 공항 레이아웃이 완전히 바뀌었다. 04년에 국내선 터미널 용량이 2배가 되었고, 용량 증대에 별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제4활주로가 1조엔(!)을 들여 건설된다. 게다가 국제선 터미널도 새로 짓고 있고, 서울, 상하이에 이어 홍콩 노선이 생기는 데다 아예 일본 정부에서 거리 제한을 조건으로 국제선을 풀어버릴 기세이다. 이게 성사되면 나리타는 이른바 '허브공항'으로서는 거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물론 하네다는 활주로가 3000m가 한계이므로 장거리는 굴리지 못한다)

  불쌍하게 된 나리타의 신세를 느끼게 하는 사건이 있다. 개항 30주년이 되는 5월 20일, 싱가포르항공이 SQ636편에 A380기를 나리타에 취항하게 예정되어 있었는데...



  후지TV 보도
  하필 그날 날씨가 나빠서 SQ636편은 나고야 주부공항으로 회항했다가 나중에 나리타로 오게 되었다. 물론 나리타에는 그 전에 투어로 A380이 여러번 오갔지만, 상용비행의 1호 착륙은 나고야 쪽에 돌아가게 되었다. (까딱하면 1호 기항도 그리 될 뻔 했다) 싱가포르항공과 에어버스, 나리타 공항측이 엄청 공들여 준비했을 행사도 모조리 취소된 것이, 오늘날 나리타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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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taman | 2008/05/27 22:22 | unspeak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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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8/05/27 22:41
우리나라였으면 당장에 강제수용 고고싱이었겠지만 일본이니 만큼 oTL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5/27 22:45
아사기리님/
일본도 웬만한 개발건은 가격 시비가 있어 그렇지 다 수용이 됩니다. 그런데 나리타 공항의 경우 안보투쟁에 걸렸던 모양이더군요. (가격 문제로 곤란했던 개발건 중에는 신칸센 신오사카역같은 게 있습니다)
Commented by 한국출장소장 at 2008/05/27 23:39
하네다의 경우 국제선 터미널을 새로 짓는다고 하던데, 아이러니 하게도 초기 터미널 자리(공항 서쪽편)라고 하더군요. 만약 사실이라면 이렇게 될 바에 왜 건물을 다 부숴버렸는지(.....)
Commented by Paldang at 2008/05/28 05:59
뭐 국가의 대표적인 사업이니, 당연히 반대하는 쪽에서는 타도대상 '0순위'가 되기 딱 좋죠.... (OTL). 그나저나 하네다에 중단거리 국제선 확장되면 NRT는 이제 장거리 국제선과 단거리 국제선 일부만 남는 OTL스러운 상황만 연출하겠군요. 설상가상으로 시즈오카공항 개항되면.. 저가수요들은 그쪽으로 내뺄테니...OTL. 뉴욕의 LGA-JFK/EWR 꼴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LGA로 도착한 국내선 승객이 JFK발 국제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LGA-JFK간 연결버스에 개떼처럼 타는 모습보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죠. (여담입니다만 DL께서 MDW-LGA-(알아서 이동)-JFK-대서양 횡단 국제노선으로 표를 팔더군요. LGA에서 짐은 다 찾아야 하고....ㄱ-)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5/28 12:48
우리나라도 이제 강제수용은 힘들죠. 당장 "온 마산 시민의 숙원사업"인 STX 공장유치 건이 고추가루 맞고 있는 거 보면...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5/28 14:38
한국출장소장님/
그러지 않고서야 하네다를 싹 갈아엎을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초기 터미널이면 한 50년 묵은 건물이니까 아마 지금 국제선 터미널보다 더 거지같을 게 뻔하죠 (...) 나리타 개항 이후 재개발이 아니었다면 하네다는 지금 히스로 이상의 초난장판이 아닐까 싶습니다.

팔당님/
그나마 LGA-JFK는 가깝기나 하죠 -_-;; HND-NRT는 최단으로 끊어도 2시간 반이니까요.

홍월영님/
예전 방식의 불도저식은 아니더라도 한국 법에 재산권을 침해하는 절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 않을까요. 당장 재개발/재건축을 66% 찬성만으로 강제성을 주는 제도가 어느 나라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메리링 at 2008/05/28 16:30
건설 초기부터 지역주민과의 마찰이 있었던 것은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기술적(!)으로도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인 줄은 몰랐군요 ;;

# 검색해보니 공항 터미날 입장시에 검문검색을 빡세게 하는 게
# 일반(?) 테러 보다는 지역주민에 의한 테러(?) 때문이라는 듯 ?
# (케이세이선에서 내려서 올라가는 길목에서부터 검문검색하는 걸 보고 좀 의아했었는데 ;;)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5/29 11:44
메리링님/
오오, 그렇군요.

일본에서 여러 공항을 가 보았습니다만 (그래봐야 다섯 곳인가...) 검문하는 데는 나리타밖에 못봤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좀 묘한 건 - 검문대상은 전철 타고 오는 사람 뿐이죠. 버스나 승용차로 올 때는 아무 문제 없이 터미널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역주민 마찰'과는 반대가 아닐지... 기억하는 게, 80년대 김포공항은 터미널 입구에 검문이 있었거든요. X-Ray도 없이 짐 풀어보는 식이었지만.
Commented by 메리링 at 2008/05/29 17:29
... 지상 출입구는 무사통과인가요 (... ;;)
정말로 미묘하군요 ;;

80년대 김포 ...
기억하기로는 아시안 게임 또는 올림픽때에는 출입문 검문은 물론
무장군인(대략 특전사 비슷한 분위기 ?)이 경비를 섰었죠 (...)
(제가 꽤나 쫄았었던 기억이 ;;)
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05/30 02:16
활주로를 반토막으로 만들다니 대단한 알박기군요 -_-;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5/30 19:50
메리링님/
그렇죠? :)

누렁별님/
아마 사회적 손실이 도롱뇽 소송건보다 몇 배는 클 겁니다 (...)
Commented by KE086 at 2008/06/19 11:44
전에 구글로 NRT 공항의 위성사진을 보고는 메인 터미널이랑 활주로의 배치가 참 희한하다 생각했었는데, 뭔가 깊은 속 사정이 있었던거군요. 잘 보고 갑니다. 참, Paldang님도 오시는군요~ 저는 아주 가끔 한번씩 옵니다 ㅎ
Commented by PPOI at 2008/06/23 22:38
본 포스팅을 보고,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일본 위키피디아에서 내용을 살펴보니, 정말 안습이군요. 일본도 이런 문제로 골머리 앓았을 줄은... 이건 뭐, 과거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문제나, 부안 핵폐기장 유치 건으로 인한 소요사태, 기타 과거 도심 재개발 등으로 벌어진 시위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합니다. 과격파에 의한 박격포 투하, 개항 전 관제탑 파괴, 철탑 농성, 토지수용위원회 관련자 협박, 폭력 등등...
진짜 공항만큼은 우리나라가 이런 사례를 참고했는지 인천 영종도에 지은 건 정말 잘한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큰 무리없이 개항은 물론, 제2개항이라 불리는 활주로 신규 확장공사까지 무난하게 처리했으니...
향후 나리타 국제공항의 위상은 몰락으로 가는 일만 남았군요. 하네다 확장 가속화, 실질적인 도쿄 접근성 불리 등등을 생각하면...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7/02 22:01
PPOI님/
사실 영종도도 논란의 여지가 많아서, 심지어 안티 영종도 책도 있습니다.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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