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역 주민이 보았던 진성고
  과거 개봉동이 강남 진입의 트랙으로 기능하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 개봉동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있는 위치에 어느날 커다란 학원 건물이 생겨 있었다. 캐치프레이즈가 무시무시하게도 '스파르타식 집중교육'이라는 진성학원은, 아마도 전국에서 거의 처음으로 생겨난 기숙학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들 아시는 대로 학원은 무진 장사가 잘 되던 것인지 옆으로 2개의 계열 입시학원이 더 생겨났고, (이름하여 '진성교육타운'이라나) 원장이라는 사람은 국회의원 선거에 이름을 올릴 정도가 되었다.

  개업 초기 학원은 잊을만 하면 신문에 광고를 냈고 (지국에서 끼워넣는 전단지도 있었다), '스파르타식'은 뜻도 모르는 채 각인되었다. 그런데 그 '스파르타식'이라는 말의 면모가 드러난 게 뭐냐면, KBS에서 특집프로를 내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전국 지상파에 대고 애들 두들겨 패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준 학원이 진성학원이다.

  물론 학생들 패 가면서 공부 시키는 학원이야 흔하게 있다. 하지만 매스컴에 그 모습을 내보내고 (여과되지 않은 그대로여도, 혹은 걸러진 것이라 해도 어느 쪽이든 문제다) 그것으로 모자라 그 뒤의 광고에 방송 사실을 자랑하는 것을 두고 몸서리가 쳐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것 중 하나로, 이 동네 학부모들 치고 드물게도 농담으로라도 '너 공부 안하면 진성학원 보낸다' 소리를 하지 않은 것을 들어야겠다)

  그 뒤 내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갈 때 즈음, 이 학원이 이제는 학교를 만든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전교생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학교 진성고등학교. 마침 나도 고등학교를 기숙사에서 다녔는데, 말이 쉬워 학교 기숙사지 짓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큰 공이 먹히는지 생각해 보자. 그게 제대로 운영이 될 것인가 하고.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명색이 특목고이고, 공립학교 치고는 꽤나 널찍한 부지에 단 500명의 학생을 수용했다. 그럼에도 기숙사가 모자라 좁은 방에 4명씩 몰아넣고도 1학년 중 60명씩 돌아가며 집에서 다녀야 했다. 한편 공립 특목고의 이점은 기숙사 비용이 전액 교육청 재정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각 개인은 급식비로 20만원선 (학생을 거치지 않고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 거래되므로 정확히는 모른다) 만 다달이 내면 되었다. 진성고는 어떤가 하면, 생긴지 얼마 안되는 학교답게 부지는 웬만한 공립학교보다 '작고', 학생은 1500명쯤 될테다. 인구밀도 평방킬로미터당 15만명이라는 게 상상이 가는가? 게다가 기숙학교는 원천적으로 비싼 옵션이다. 즉 누가 떼먹지 않더라도 학부모에게는 부담스럽고 학생에게는 불만족스러울 게 뻔하다는 이야기이다. 누가 삥땅치지 않더라도.

  아니나 다를까,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에 가면 기숙사에서 날아온 '살려주세요' 편지가 굴러다닌다든가 하는. 사실은 예상이 가는 것이었다. 학생을 푸아그라용 거위같이 굴리는 학원이 학교를 만들면 어떨게 될 것인가 쯤은 말이다. '자율적으로' 사당오락을 전교생에게 몰아붙이는 학교는 설령 내부 서비스가 버즈 알 아랍 수준이라도 있을 곳이 못된다. 그리고 그다지 상기할 일이 없던 진성고라는 이름은, 10여년이 지나 다시금 오르내리게 된 모양이다.


  나는 이 책임을 학부모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가 비위와 인권 부재 상태로 굴러간다는 거야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면, 어떤 이유에서든 입학생 중 30~50명 정도는 도중에 학교를 떠나는 고등학교에 자식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진성고야 어쨌든 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여기쯤에서, 나는 그간 조금은 자랑스러워 했던 '모교'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기숙학교. 24시간 한 틀 안에 머무르는 학교는 까딱하면 문드러지기 십상이므로. 적어도, 학생들에게 입시 말고 뭔가 한두가지를 해 볼 수 있는 학교로 남아주기를 기대하고 싶다.


덧. 내가 나온 중학교에서도 어떻게 진성고에 간 친구가 있었다. 이름이 '진성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자그만 우연의 일치.

트랙백 밸리: 뉴스비평
by Dataman | 2008/03/22 05:20 | unspeak | 트랙백(3)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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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파란거북 at 2008/03/22 19:02
진성고 출신 친구가 한 명 있어서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긴 어떻게 거기서 버텼는지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진성고 막장인건 애저녁에 알았고 저 동영상 보고도 별로 놀라지도 않게 되었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Dataman at 2008/03/22 19:19
파란거북님/
으음... 의외로 묘한 데에서 연결점이...

근데 이 네타 무진장 잘 팔리는 중. 히트수가 평상시 대비 5배 -_-;;
Commented by 파란거북 at 2008/03/23 02:17
단점이라면, 하도 그렇게 진성고 막장이야기를 들으니 저 동영상을 봐도 '진성고가 그렇지 뭐' 로 끝난다는 정도. 뭐 스카이만 잘보내면 그깟 비리따위....... 분위기는 역시 이런 시대를 잘 타고나는걸지도 모르겠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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