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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의 남자들 치고, 소년 시절에 해적판으로 대거 출판되었던 홈즈나 뤼팽의 이야기에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리오스트로의 백작부인'은 모리스 르블랑의 초인기 서스펜스 시리즈에서, 그 스토리의 기원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은 제목에 낚였습니다. 역시나 일본 아니메의 역사에 남을 걸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과 연관이 지어지기 때문이죠. 도서관에서 방금 반납되어 대충 쌓인 책들을 뒤져보는 건 이런 재미가 있습니다.
(*단 1980년대 후반의 시점에서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은 베른협약에 의거 저작권이 풀린 상태. 모리스 르블랑은 아직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문출판사'의 이력은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도일 경에게 저지른 죄는 남아있다고 봐야죠.) 어째서 20세기 초엽에 미스테리 문학이 대두되고 또 걸작이 속출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만, 그 기틀을 만든 사람이 아서 코난 도일이라는 데는 별 이의를 달 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에 비해 서스펜스면은 약하지만 그건 시대의 차이이고, 기발한 트릭과 함께 세계로 뻗어나간 (...) '대영제국'의 시민다운 호방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이에 비해 르블랑은 보기 드물게 아르센 뤼팽이 아르센 뤼팽으로 되는 시발점을 그렸다는 본작도 미스터리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걸리버 여행기가 연상되는 활극에 해당합니다. 라울 당드레지로 태어난 뤼팽은 성장 환경으로 인해 도둑 기술을 어릴 때부터 -대체로 본의 아니게- 연마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추리력이나 직관력, 각종 교양에 심지어 독에 적응하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스킬을 갖춘 대도죠. 그러나 선량한 생활인일 수도 있었던 뤼팽이 왜 '괴도 신사'로 바뀌는가, 이것이 본작의 스토리입니다. 칼리오스트로 백작 (자칭이지만) 이라는 인물은 사실 실존하는데, 그 '부인'이라 통하는 여인 조세핀 발사모에게 휘둘린 끝에 그간 닦아온 재능이 크게 빛나게 되더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보너스로 마지막에 뤼팽에게 좌절을 맛보는 조세핀이 그의 아들을 납치함으로써 뤼팽은 당드레지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이런 각성의 궤적은 뤼팽의 체력 및 지력, 행동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대적자들의 실책과 함께 크나큰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이 가장 먼저 출판되었다면 뤼팽이 그 이름을 날리기는 어려웠겠죠. 그만큼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못하고'가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흥분하는 떠벌이에서 폐인 사이를 격하게 오가는 뤼팽을 참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이미 잘 성립된 아르센 뤼팽의 Epidode 0 격의 작품이라면 이런 진행은 적절하다 못해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엄마친구아들 한트럭이 와도 묻혀버릴 초능력은 여전) 게다가 스무살 젊은 뤼팽은 이미 밑바닥을 많이 굴러본지라, 이를테면 '고작 10억프랑쯤 날렸다고' 어쩌고 호언할 정도로 배포가 두둑합니다. 몽키 펀치 선생에게 '당신이 본 뤼팽은 아마 이 뤼팽이 아닌가' 하고 묻고 싶어질 정도로 대담무모한 뤼팽이 그려집니다. 재미있는 건 셜록 홈즈와 함께 뤼팽을 긴장시킬 수 있는 유이의 적수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즉 조세핀이죠. 조세핀의 정체에 대해서는 내내 다른 서술이 이어집니다만 (이는 조세핀이 뤼팽을 기만하기 위해 계속 말을 바꾼 결과), 사실 조세핀이 정말 어떤 여자 (특히 '몇 살') 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데티그 일당이 처음 믿었듯 마리 앙투아네트와 친구 먹었다던 100살 넘는 마녀이든, 혹은 어쩌다 보니 모녀간이 자기도 헷갈릴 정도로 판박이여서 4대 백작부인 노릇을 하고 있든 말이죠. 중요한 건 조세핀과 뤼팽이 서로 상대를 기만하고 휘젓기 위해 벌이는 심리전입니다. 여기에 '공주님' 클라리스양의 존재가 다소간 감초 노릇은 합니다. 반가운 이름만큼이나 비중을 기대할 건 아니지만서도. 근 20년 가까이 전에 읽은 소설이 거의 기억나지 않아서, 앞으로 시간이 나면 슬슬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더 읽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홈즈 쪽은 숫자가 10개쯤밖에 박혀 있지 않은 스도쿠마냥 골치가 아파서 말이죠. 트랙백 밸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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