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 3대 - 돌아왔습니다

  사실 저희 집은 역귀성을 하는지라 지난 수년간 명절때는 귀향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여러 이유로 차례를 모신 후 잠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할머님이 돌아가실 때 부모님이 모셔 드리게 되어 귀성과 역귀성을 동시에 하는 진귀한 일이 벌어졌습니다만, 이번 추석에는 저도 끼이게 된 거죠. 귀향을 하면 난감한 건, 저는 여러 어른들이 누가 누군지 거의 모르겠는데 반대로 저를 못 알아보는 어른들은 거의 없다는 거죠. 아버지 계신 동안에는 입 딱 다물고 고개만 숙이면 넘어가긴 합니다만...쩝.

  저도 나이도 나이고 해서 이제 슬슬 압력이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그건 별로 특이한 것은 아니고, 명절 때 친척 (...이라곤 해도 제 경우 최소한이 두자리 촌수입니다만... 혹은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대 -아버지께는 고모님- 이거나) 들을 뵙다 보면 화제는 딱 한가지로 모아지더군요.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는 건 아니고, 역시나 제사와 장묘의 이야기입니다. 누구네 집이 묘를 어떻게 썼고 누구네 집이 제사가 어떻게 굴러간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역시나 거의 팔순이 다 되어 가시는 할머님들께는 아주 절실한 문제가 되더군요. 뭐 누구네 며느리 흉보기 포함해서 말입니다.


  제 경우 초등학교 갓 들어갔을 때 쯤, 어느 해인가는 아버지가 거의 미국을 옆집처럼 드나드는 바람에 여러번 제주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 때는 적게 봐도 5대조 (제게는 6대조) 까지는 제사를 지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통 무슨 제사 많이 지낸다는 집이 1년에 12번이라고들 합니다만, 가장을 기준으로 부친부터 5대조까지 기제사 9번에 (보통 가장의 모친은 생존한 경우가 많아서) 설, 한식, 차례 제사까지 12번이라는 계산이 서죠. 무슨 종손이 아닌 한 이 정도입니다. 그랬던 게 언젠가부터 '曾'자가 붙는 지방도 쓴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봐서는 제가 크면서 제사가 크게 감축되어 온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줄여온 것은 다름아닌 제 할머님과 부모님이시고,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제 대로 넘어오는 것을 우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할머님께서는 아직은 손주며느리가 당신 제사를 차려주실 것을 기대하시는 모양이더군요. (덧붙여 제 동생 말로는 제 집안 스펙만으로도 웬만한 여자는 도망가는 데 충분하다든가...orz) 하지만 저는 제사를 차려드리냐 마느냐 이전에 손주며느리 얼굴 보여드린다는 보장도 못 해드리지요. 뭐 1만일에 근접하는 솔로력도 그렇고 ;)

  마찬가지로 이곳 저곳에 흩어진 산소를 어떻게 하는가도 문제가 됩니다. 한 10년 사이에 상당한 산소를 처분한 적이 있는 데다 지금 있는 산소도 관리 불능 사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사실이죠. 애시당초 부릴 만한 인력이 마땅찮으니까요. (아마 묘지 예초하고 다니는 데는 외국인 노동자도 없을 겁니다) 그리 하여 지금 손대야 하는 다섯 곳의 산소를 어떻게 하느냐를 두고 할머님과 부모님, 그 외의 몇 친척의 사이에 의견이 오가고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할머님 살아 생전에는 결론이 안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할머님께서는 당신도 번듯한 묘에 눕고 싶으실테니까요. 덧붙여 그것을 맞춰줄 수 있는 자식은 대한민국에 흔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50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이제 와서 귀농할 것도 아니고요.


  이래저래 즐거운 명절이어야 한다는데, 조선 양반의 풍습이란 게 원체 번잡한 관계로 많은 집안에서는 수년째 명절을 '유산 처분'에 골몰하며 보내고 있는 것을 보다 절절히 느끼고 왔습니다. 간만에 가본 산소에는 웬 솔방울에 상수리 싹이 그리 많은지요.


  보너스로 오다가 찍은 보름달 살짝 넘은 달...입니다. 차고 넘쳤으므로 이걸 봐도 초사이아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by Dataman | 2006/10/08 02:46 | basement (to destro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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