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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을 며칠 앞둔 대학은 꼭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극히 조용합니다. 그러나 대학원생 신분인 관계로 꼼짝없이 나와 있는 사람도 있고, 비슷한 이유로 도서관은 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그리고, 여기에 끼어 자신들의 정의감을 표출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서관 통로에는 연중무휴 대자보의 홍수가 이어집니다.
서울대라면 다들 아시는 '반권' 황라열 학생회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물러나 버렸고 이에 따른 진통이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원생이 뭘 알겠습니까) 그 옆에는 비교적 전통적인 주제도 있는데, 예를 들면 미군부대 이전 반대라든가 노조 문제 같은 게 있고, 오늘의 타깃, 북한 문제가 있습니다. 임수경 방북 이후로 대학 (요새 분위기로는 '운동권'으로 한정짓도록 하죠) 은 대북행동의 첨병이었습니다. 북에서 무슨 행사만 있다 하면 통일부 업무량을 늘리는 그룹이 있고, 주요 대학에는 '어느 행사 방북단'이 거의 빠짐없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방북 후라든가, 혹은 평상시에도 그들의 입을 대변하는 성향을 보이는 게 보통입니다. 이 태도가 딱히 잘못된 건 아니겠습니다만, 그들의 주장을 놓고 보면 딱하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새로 개장한 도서관 통로의 자보판에 두 대자보가 있습니다. 아마도 독립적으로 걸린 것 같은데, 우연의 일치이든 자기들 매뉴얼이든 근래 미국이 벌인 군사훈련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읽는 분들이 사회적 상식을 갖추었다면 쉽게 예측할 수 있듯, 이들은 아주 멋진 논리 체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러저러한 군사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건 예외없이 북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이게 북을 자극하므로 북의 ICBM 발사는 정당하다, 이런 딸딸이성 농후한 결론을 내려두고 있는 것이죠. 얼마 전 남쪽에 왔던 북측 대표라는 작자가 북이 생쇼를 벌여 남이 보호받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만, 이들의 말도 별 차이는 없습니다. 북의 행보는 미국에 의해 강요된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체제 전복이 된다는 거죠. 뭐 어디 가도 변명할 여지 없는 일본인 납북 건을 제쳐두고 할 말이라곤 그것밖에 없는 것이야 별 수 없지만서도. 압권인 부분은 이것입니다. 'XX년 미국이 이러저러한 도발을 할 때 '광명성 1호'를 발사하여 우호적인 보고서를 이끌어냈다'라는군요. (아마 이 건 터졌을 때 자보 쓴 친구들은 중학생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드러나 있는 사실은 이렇죠. 클린턴 말기에서부터 미국이 북을 조여온 건 사실입니다. 그거야 미사일 팔고 핵물질 수입하고 하는 독재정권이 압박을 받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습니다만 (당시 대만 원자력발전소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수입하려다 좌절되기도 했습니다) 북은 어느날 갑.자.기. 로켓을 날렸다가 미국의 동해 지역 군사정보망에 적발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ICBM 대포동 1호'로 명명되어 퍼졌고, 이때 북이 비난을 피하고자 한참 뒤에 대대적으로 선전한 게 '인공위성 광명성 1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북의 표현을 100% 믿자면 이번의 '대포동 2호'는 북의 첫 ICBM이 됩니다. (근래 북의 발언을 놓고 보면 예전에 대포동 1호를 호도하던 건 기억에 없는 모양이지만) 숨겨가며 몰래 날린, 그것도 나중에 부인한 것과 미리 탐지되고서도 배포 등등하게 날린 것을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는 건 웬만큼 머리가 없기 전에는 할 수 없는 발상 아니겠습니까. 미군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민감한 것도 북이나 그 지지 진영이 얼마나 뒤가 구린가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팀 스피릿이라든가 그 외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합동 훈련은 100% 북이 타깃인 것으로 봐도 됩니다. 다만 북에서도 유사한 훈련은 얼마든지 하고 있을 뿐더러, 군대가 훈련을 안하는 건 그야말로 직무유기죠. 한국군의 주적은 북이고 가상적으로 중국, 러시아 정도가 상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 가상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당장 동맹 관계를 체결하고 있는 상대를 제외한 전부입니다. 북이나 중국, 이란이 들어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사실 여부는 모릅니다) 이를테면 일본 자위대 (분명 동맹입니다) 의 쿠데타, 독일 신나치주의자에 의한 무정부상태 같은 것도 있을 게 분명합니다. 제가 미국 정부나 군의 수뇌부라면 한국의 민주노동당도 시나리오에 넣습니다. 왜냐면 직접 동맹을 체결한 정권 (현재는 노무현 대통령 이하 정부) 과 적대적으로 될 수 있거든요. 그리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만드는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패권주의라고 비판하는 건 가능하나, 알래스카 촌구석에서 벌어지는 훈련을 대북 압박으로 보는 건 - 말하자면 숨어있는 살인범이 지나가는 레커차 사이렌 소리에도 놀라는 꼴이나 다를 것 없군요. 푸틴은 그런 데 눈깜박도 안합니다. 현재의 북의 체제는 정말 딱한 정권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체제입니다. 얼마나 갈까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김정일 체제의 수명은 별로 길 것 같지 않습니다. 수직적인 권력 체계라면 정말로 태양왕이 되든, 아니면 호가호위라도 하든 해야 할텐데, 근래 봐서는 딱히 호랑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5.16에서 6.29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한국의 정변을 방치했듯이, 중국이나 러시아도 북 자체가 거꾸러지지 않는 한 그다지 김정일을 떠받치려 들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사이 내부의 졸자들에게 떡고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언제든 넘어가는 거죠. 공동의 적으로 미국을 끌어들이려 하지만 근래 머리 나쁘다는 평을 듣는 부시 행정부도 그리 낚이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부시 행정부와 맞선다고 해서 정의로운 정권인 건 아닙니다. 그간 미국이 전복시킨 정권은 대체로 뭔가 문제가 있기는 했습니다. p.s. 박군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더군요. 트랙백합니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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