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군기잡기
  화학 연구실과 군대는 묘하게도 결정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까딱하면 사람 잡을 요인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군대에서 사람이 죽는 건 (평시에는 어느 모로 봐도 가장 많은 자살 빼고!) 하나, 화기, 둘, 화생방, 셋, 교통사고 혹은 그 부류인데, 화학 연구실에는 Firearm도, Chemical weapon도 넘치도록 많다. 당장 나 자신부터 청산가리를 만진다! (다행히도 맨손으로 만진 적은 없다만...)


  사실 대학원이란 데가 요새는 아니긴 해도 과거에는 남성 중심이기도 하고, 그 대부분은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일단 믿자) 이행하고 온 사람들이 채웠던 곳이다. 여기에 지도 교수 (라고 쓰고 간부라고 읽을까?) 까지 있곤 해서, 까딱하면 병영화되기 십상인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 명의 잘못은 연대책임'에 가까운 환경까지 주어지면, 그 다음은 만만찮게 꼬일 잠재성을 갖춘 곳이 연구실이기도 하다. (조금 다행히도 내가 있는 연구실은 여초가 두드러진 곳이다. 하기야 과 전체적으로도 석사과정은 여학생이 더 많으며, 화학 쪽이 여성의 진입이 좀 더 활발한 게 사실.)


  개개 연구실의 분위기야 그들이 택하기 나름이니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둘 일이고, 내게 그런 여건이 닥쳐 온다면 달가운 일은 아니다. 카투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나는 말년에 후임들에게 '솔직히 너무 신경 안 쓰시는 것 아닙니까'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버려 두는, 그리고 간섭을 피하는 쪽이므로. 게다가 군대의 상명하복은 솔직히 말해 평시의 안전생활을 위해 다지는 것이 아니다. 군기라는 게 어째서 '잡지 않으면 사고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나. 군대는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도 못하는 '전쟁'이라는 초 특수상황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집단 아닌가. 그런데 연구실에서 이런 환경이 장악한다면 그 연구실에서는 이를테면 자기 학생 논문 가로채기같은 일밖에 벌어질 게 없을 듯하다.

  카투사 2년 2개월짜리 얼치기 예비역의 눈에서 본다면, 보통 때 각을 잡아봐야 필요할 때 제대로 예리함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 한 5km쯤 달리고 나서 막판 스퍼트 건다고 뭐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필요할 때 영민하려면, 보통 때는 약간의 웅크림이 오히려 어울려 보인다.



덧붙여 개인사:
  아기 다리 고기 다리던 휴가철이 도래하여, 목요일부터 미국 쪽으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열흘 쯤 블로그가 놀고 있을 듯합니다. 뭐 보통 때도 마찬가지지만 orz
by Dataman | 2006/08/07 20:01 | unscience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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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타츠란 at 2006/08/07 20:39
캐미컬 X
Commented by 타츠란 at 2006/08/07 20:39
(형, 농담이야;;; 죽이지 말아줘;;;)
Commented by 코토네 at 2006/08/07 21:36
음.. 몸조심 하세요~
Commented by 나나미 at 2006/08/07 21:57
여행 즐겁게 다녀오세요... ^^;
Commented by 고독한별 at 2006/08/07 23:11
뭐, 군대에서 무슨 사고가 났다 하면 '군기가 빠져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대학 입시 때도 학교 교사들이 대부분 '애들을 잡으면 점수가 올라간다'는 스파르타식 교육관에
빠져있어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능률은 군기에 비례한다'는 사고 방식이 언제쯤 사라질 것인지...

그리고 여행 잘 다녀오세요. ^^; (역시 저 같은 놈에 비하면 인생을 참 즐겁게 사시는... ㅠㅠ)
Commented by Dataman at 2006/08/08 00:17
ㅌ님/
케미컬X보다 센 것 많다. 그런 고로 죽여주마 (왜!)

ㄱ님/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고독한별님이 그리 말씀하시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니까요 :)
Commented by 파란거북 at 2006/08/08 01:27
근데 실험실에 여초현상이 두드러지면 또 골치아파지는게, 실험실간 혹은 실험실 내부의 암투-_-가 횡행하곤 하죠. 중용이라는게 좋긴 한데 참 어렵죠=_=

덧. Aminopyrene-_-따위로는 Harmful-_-이라던가 Toxic-_-의 명함을 내밀기엔 좀 부족해보이겠죠? 뭐 손에는 항상 Methyl Chloride라던가 하는 녀석이 묻어있긴 하지만요-_-
Commented by 큐브 at 2006/08/09 13:15
@_@ 사회생활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눈물이 앞을 가려요.. ㅠㅠ
근데 사실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실험실 밖의 사회도 저런 면에서 그다지 다를 게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오.

어쨌든 휴가 잘 다녀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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